나의믿음생활...

라우렌시오(Lawrence)

코알㉣r 2012. 8. 11. 00:15

 

성인명 라우렌시오(Lawrence)
축일 7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교회학자
활동지역 브린디시(Brindisi)
활동연도 1559-1619년
같은이름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체사레 데 로시는 나폴리(Napoli) 왕국의 브린디시 태생으로 그곳의 콘벨투알 회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16세 때에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신학, 철학, 성서,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수 개 국어를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연구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북 이탈리아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여러 고위직을 맡았으나 유대인 개종을 위하여 주로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로 파견된 적도 있으며, 프라하(Prague)와 빈(Wien) 그리고 고리지아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여 이 수도원이 후일에는 보헤미아(Bohemia),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티리아 관구로 발전케 하였다. 그는 루돌프 2세의 요청을 받고 독일 군사지도자들을 격려하여 터키인들과 싸우게 하는 한편, 자신도 종군신부가 되어 전투에 참가하였다. 1602년 그는 카푸친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또 필립 3세를 설득하여 가톨릭 연맹을 만들려는 황제의 의향에 따라 에스파냐로 파견되었을 때 마드리드에도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외교적,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황제 혹은 교황의 특사로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 창세기와 에제키엘서의 주석서이다. 그는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9년에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44-146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 '라우렌시오, 브린디시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2033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브린디시의 성라우렌시오 사제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75-177쪽.
  
 

 

 

 

 

 

[금주의 성인]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St. Lawrence of Brindisi, 7월 21일)

성덕 깊은 겸손한 천재, 여러 학문 섭럽, 유럽 전역 돌며 전교

 

 

 

1559~1619. 나폴리 왕국(현 이탈리아) 출생 및 포르투갈 선종. 사제. 교회학자.
6살 때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성인은 좋은 성직자가 되기 위해 늘 기도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16살에 카푸친회에 입회한 성인은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천재적 지능을 가진 그는 한 번 배운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20살이 되기 전에 여러 학문을 섭렵했고 유럽언어는 물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습니다. 고대 성경 원문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절대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거나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학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의 성덕과 영성 역시 깊어졌는데 그는 누구보다 겸손했습니다.
성인은 해박한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강론으로 유럽 전역에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또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키는 화법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며 많은 유다인들을 개종시켰습니다. 성인 주변에는 설교를 듣고 성인에게 축복을 받으려는 이들로 넘쳐났습니다.
성인은 터키군 침략으로 어려움에 처한 독일 황제 부탁을 받고 군종사제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젊은 군사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며 이들이 두려움 없이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그 역시 직접 말을 타고 십자가를 손에 들며 전투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는데 단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독일군은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성인은 1602년 카푸친회 총장으로 선출된 뒤에도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전교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수도원을 세우며 수도자를 양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성인은 1619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설교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88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이후 교황 요한 23세는 1959년 성인을 교회학자로 선포했습니다.

 

 

 

[평화신문, 2011년 7월 17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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