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테마 ~!!

철도 기관사가 사랑한 기찻길

코알㉣r 2012. 7. 28. 01:24

서생역 기찻길

월평균 160시간 이상 레일에 몸을 맡기는 철도 기관사. 기차가 곧 생활인 그들에게도 달릴 때마다 감격스러운 기찻길은 있다.

입사 3개월차 최영준 부기관사

 

 

 

장항선 청소~원죽․판교~서천 구간

최영준 부기관사

 

 

 

중학교 시절 친척분과 가깝게 지내는 철도 기관사의 도움으로 운전실에 탑승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짧은 경험이었지만 구불구불 선로를 따라 달라지는 풍경에 그만 마음을 빼앗겼고, 바로 그날 철도 기관사가 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철도대학을 거쳐 철도공사에 입사한지 갓 3개월, 하루하루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기찻길이 제겐 감동입니다. 아마도 아직은 옆으로 지나치는 풍경이 더 익숙한 탓이겠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각별한 구간을 꼽는다면 장항선 청소~원죽 구간입니다. 용산기관차 승무사업소로 처음 발령을 받고 달렸던 길이기도 하고요.

당시 견습 기관사였던 저는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사가 높아지는 선로가 눈에 들어왔고, 흔치 않은 광경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철도는 쇠와 쇠가 맞물려 움직이는 만큼 미끄럼에 약하기 때문에 오르막과 내리막(구배) 구간이 거의 없거든요.

선로의 경사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 기울기지만, 눈으로 봤을 때는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합니다. 때문에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이기도 하고요.

 

 

 

 

판교~서천 구간

 

 

 

 

그리고 또 한군데, 최근 이설된 판교~서천 구간도 아름답습니다. 판교역을 출발한 기차는 컴컴한 터널을 지나 바다만큼 넓은 저수지를 통과하는데, 그 장쾌한 풍경에 매번 놀라게 되는 구간입니다.

입사 8년차 김선균 기관사

경부선 조치원역 부근․장항선 익산~대야 구간

 

 

 

김선균 기관사

 

 

 

수능에 실패한 이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철도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 8년 넘게 열차를 운행하다 보니 기관사가 얼마나 멋진 직업인지 종종 느끼게 됩니다. 특히나 멋진 풍경을 마주할 때는 말이죠.

기관사는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누구보다 먼저 만날 수 있는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매일매일 바뀌는 날씨와 자연풍경에 매번 같은 길을 달려도 지루할 틈이 없죠.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을 마주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발견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경부선 조치원역 부근도 그런 장소입니다. 조치원역을 출발해 오른편으로 공설운동장을 지나면 작은 천이 나타나는데, 그 주변으로 500m가량 벚꽃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물론 화려한 정도만 따진다면 진해나 여의도가 한수 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곳은 지역 주민조차 신탄진 KT&G 공장 근처로 발길을 돌리는 탓에 한결 여유로운 꽃놀이가 가능합니다.

 

 

임피~대야

 

 

 

또 모든 조건이 우연하게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평생 잊지 못할 진풍경도 찾아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반인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 대부분이지만요.

익산에서 용산까지 운행되는 장항선의 첫차는 1552 열차로, 발차시각은 새벽 5시30분입니다. 한겨울에는 마치 한밤중처럼 깜깜한 시간이죠.

그날 저는 익산역에서 첫차를 끌고 임피역을 거쳐 대야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구간은 넓은 평야와 농가 몇 채가 전부인 농촌을 가로지릅니다. 때문에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봄이나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는 가을 풍경도 무척 아름답죠.

그날은 밤새 내린 눈으로 사방이 하얗더군요. 아무도 밟지 않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밭을 달리는 기분이 아주 짜릿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람 없이 사분사분 내리던 눈이 열차의 빠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기관차 쪽으로 쑥 하니 빨려드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주를 떠도는 혜성이 날아와 박히는 듯 느껴졌거든요. 불과 10분 남짓 펼쳐졌던 풍경이었지만, 제게는 지난 7년간 가장 가슴 벅찼던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입사 32년차 한민철 기관사

 

동해남부선 해운대~송정 구간

한민철 기관사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추억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기찻길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재래선 철도가 이설, 개량되고 방음벽이 주변 풍경을 가로막기 시작하면서 기차여행의 낭만 역시 조금씩 사라지고 있죠.

그래도 아직은 저의 아쉬움을 채워줄 몇몇 구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납니다. 동해남부선의 해운대~송정 구간도 그중 하나이고요.

단 5분에 이르는 이 기찻길은 선로와 맞닿은 해안 절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코스입니다. 동해남부선 유일의 바다 구간이기도 하고요.

 

 

해운대~송정 구간

 

 

 

 

 

 

 

 

해운대역을 출발한 기차는 바다를 만나자마자 그 물빛 하나 제대로 헤아릴 틈 없이 바로 산길로 접어듭니다. 때문에 달리 때마다 아쉬움이 남은 구간이기도 하지요.

서로 지척에 둔 사이지만 해운대와 송정의 바다는 분명 다릅니다. 불과 역 하나를 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규모와 분위기에서 큰 차이가 느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