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와 성지순례의 의미
성지의 개념과 정의
사목권을 가진 교구장 주교가 신자들의 영신적 이익을 위하여 정식으로 공문이나
혹은 교구장이 주례하는 성사 거행으로써 어떤 장소를 성지로 공식 선언할 때 그 장소는 성지이다.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순례하며 기도하는 장소를 교구장이 인정하여 성지로 공식적으로 선포할 경우 그곳은 성지이다.
또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순례하며 기도하는 장소를 교구장이 성지로 받아 들이고,
그 곳에서 많은 신자들과 함께 미사 봉헌이나 전례를 관례적으로 계속 거행할 때 이를 성지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역사적인 의미가 분명히 있다하더라도 교회 소유의 토지나 교회 성물 혹은 기념물이 전혀 없고 따라서,
교구장 주교의 전례 거행이 관례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장소는 사적지일 수는 있어도 교회 성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전례 거행이나 미사를 봉헌할 수 없고 순례 행위가 이루어 질 수 없는 장소를 성지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지라는 개념은 사목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고,
역사학적인 의미 부여와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둔토리, 범골 같은 경우 아직 성지로 부를 수는 없다.
이는 교구장이 이를 활용하여 교회의 공식적인 예절 거행이나 순례 행위 등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장소는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표지석 정도는 세우는 것이 좋겠다.
성지 순례
성지 순례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스러운 땅
즉, 성지(Terra sancta, 聖地 : 예수님께서 태어나 생활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땅인 팔레스티나)와
성모님이나 성인들의 유적지나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을 방문하여 경배를 드리는 신심행위다.
성지 순례의 의미
순례의 기원은 뚜렷하지 않지만 구약의 창세기에서 하느님을 찾는 순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델, 세켐, 마므레, 실로, 미스바, 길갈 등 선조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한 장소인 성소를 찾아가
하느님께 대한 공경과 감사의 제물을 바쳤다(신명26,1-10. 1사무 1,3-7).
그리고 신약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하는 성가정을 볼 수 있다(루가2,41-42).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 성지에로의 여행은 1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화된 땅을 공경하고 경배하기 위해 순례하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로 생각하였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순례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화된 땅,
그분의 공생활의 터전이 되었던 팔레스티나 지역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장소였던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지로 불리는 곳은 200개가 넘는다.
이곳은 대부분이 치명 터로 불리던 곳으로,
이 치명 터가 ‘순교 성지(殉敎 聖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56년에 새남터 순교 기념탑이 세워지면서 부터이다.
그런데 새남터의 ‘성지(聖址)’란 표기는 치명 터에 대한 매우 적절한 표기일 뿐 아니라 성지(聖地)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성모님이나 성인 또는 순교자와 관련된 사적지나
“순례지”를 일반적으로 ‘성지’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는 문제 삼지 않는다(천주교 용어집)
순례지는 많은 신자들이 특별한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 밖의 거룩한 장소로 교구 직권자의 승인이 있어 하며(교회법 1230조),
수원교구에는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한덕운 등 70여 명의 순교지 남한산성, 윤유일 등 초기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는
어농 성지, 성 김대건 신부님의 성장지 골배마실 성지와 영세터 은이 성지,
그리고 은신처인 한덕골 성지가 있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가 있는 수리산 성지,
성 김성우와 순교자 8위 묘소가 있는 구산 성지, 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교우촌이고,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 활동지이며, 정 바오로와 정 베드로 순교자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단내 성가정 성지,
성 김대건 신부 묘소가 있는 미리내 성지, 병인년 대 박해 때 이름 없이 순교한 순교자들의 순교지로 남양 성모 성지,
성 도리 헨리꼬 신부 선교지인 손골 성지, 병인박해 때 순교한 무명 순교자들이 순교한 죽산 성지, 수원 성지, 양근성지 등이 있다.
순례자는 신앙을 갈구하고 하느님을 찾는 사람으로서 성지 순례를 할 때는 먼저 충분한 준비와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순례에 임하는 순례자는 먼저 순례의 목적을 분명히 설정하고 난 다음
순례의 여정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사와 지식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순례자들에게 교회는 순례의 고유한 영성적 성격을 충분히 설명하여
마땅한 준비를 갖추도록 배려하며 순례자들이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여행한다는 것을 깨달아
순례의 결실을 풍부히 거둘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지 순례의 목적
누구든지 일상에 파묻혀 숨가쁘게 살다 보면 자기 개인의 신앙 생활은 물론,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도 꾸준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하느님과 나의 관계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형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느님과 자신의 멀어진 관계를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내적인 삶을 하느님 안에서 다시 살펴보는 가운데 흐트러진 신앙을 바로잡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또는 일을 새로 시작할 때,
잠시 복잡한 일상을 떠나 조용히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관계된 성스러운 땅,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가 생생히 남아 있는 성지를 찾아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반성할 때, 좀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 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순례를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하느님을 자기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지혜를 순교자를 비롯한
신앙의 선조들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지 순례에 임하는 태도
언뜻 성지 순례라 하면, 성지를 찾아가 참배하고 해당 성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전부라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순례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신앙인의 삶이란 결국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데 있다면, 이와 같은 신심 행위는 나의 삶이 변화되어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지와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선조들의 삶은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의 눈을 뜨고 침묵 속에 조용히 귀기울이면 얼마든지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 마침내 목숨마저 바친 순교 성인들의 삶을 배우며,
본받으려는 결심을 세우고, 그분들의 도움을 빌며 돌아올 수 있다면 순례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을것이다.
한국의 주요 성지
우리 나라는 선교사의 선교 노력으로 복음이 전파된 다른 나라와는 달리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이다.
그뿐 아니라 모진 박해를 딛고 일어나 복음의 뿌리를 깊숙이 내린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박해의 피로 모든 생생한 순교 현장들과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가 깃든 장소들이 많이 있다. 팔레스티나 지방이나 로마 등지를 순례하기 전에 먼저
우리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일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1)순교지
성지 가운데 순교지로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등 주로 주교와 신부들이 처형된 장소인 새남터,
44인의 성인과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 기념지인 서소문 밖 네거리,
100년 박해 중 가장 혹독했던 병인 박해동안 1만 명 이상의 교우들의 목이 잘린 절두산,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이들을 성인품에 오르게 했던 당고개(서울 용산),
기해 박해와 병인박해 때 수많은 교우들이 순교한 남한산성, 생매장으로 순교한 교우들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도 24명이나 되는 죽산, 최인서(요한)와 6명의 교우들이 순교한 갑곶돈대(경기 강화), 김필립보 등이
처형당한 남양,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짐진후(金震厚, 비오) 등 2,000명이 넘는 교우들이 태형(笞刑), 자리개질,
생매장으로 순교한 해미, 병인 박해 때 다블뤼 주교 등이 처형당한 갈매못(충남 보령),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 248위 외에도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처형된 황새바위(공주),
이름이 알려져 오는 분만도 123명이나 되는 순교지인 홍성, 잔혹한 백지사(白紙死)로
많은 이들이 순교한 여산, 1801년 유향검 가족이 처음으로 처형되면서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은 전주 숲정이,
호남의 사도 유향검과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처형된 풍남문, 형구돌로 순교한 김 요셉 등의 교우들이 처형된 장소인 연풍,
이윤일(요한) 등 55명의 순교자를 내 대구 관덕정, 허인백 야고보 등이 순교한 울산 장대벌, 170여 명의 교우들이 맞아 죽은
제주 관덕정 등이 있다.
(2)순교자들의 묘소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거나 묻혔던 장소로는 기해 박해 때 앵베르범 주교 등 세 분의 성직자들이 묻혀 있던 삼성산,
'황사영 백서'로 유명한 황사영 묘(경기 양주),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김성우 등이 묻혀 있는 구산, 초기 교회의 선각자 이벽 등을 이장하여 성역화한 천진암,
1790년, 북경에서 영세하고 한국 최초로 견진 성사를 받은 윤유일 바오로 묘(경기 이천), 김대건 신부 등이 묻혔던 미리내,
16기의 무명 순교자의 묘가 있는 배티, 우리 나라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의 묘소가 있던 반주골(인천 만수동),
최양업 신부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이 묻혀 있는 수리산, 해미 순교터에서 순교한 이들이 묻힌 다락골(충남 청양),
숲정이에서 순교한 성 손선지 등과 여산에서 순교한 10분의 무명 순교자가 묻혀 있고
1840년 경부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천호(天壺), 유항검의 가족6명을 합장한 치명자산,
박상근 마티아가 묻힌 마원, 김영제 베드로가 묻힌 살티, 정 안토니오 묘, 윤봉문 묘, 박 빅토리노 묘, 오륜대, 장 마리아 묘 등이 있다.
(3)초기 교회의 발상지
초기 교회의 신앙의 요람지로는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인 천진암, 정약용 3형제가 태어났고
정약용의 묘소가 있는 마재, 유방제 신부와 모방 신부 등이 조선어와 풍습을 배우던 구산, 김대건 신부의 조부 김택현이 옮겨오면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된 골배마실(경기 용인), 옹기와 숯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최양업 신부가 12년 동아 선교의 근거지로 삼았던 배티, 150년 이상된 유서 깊은 교우촌들이 있던 갓등이(경기 화성),
김대건 신부가 태어났던 신앙의 못자리라 불리는 솔뫼,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입국했던 곳에 세워진 나바위 성당(전북 익산),
1840년경 부터 공소가 되어 마을 전체가 교우촌인 천호, 병인 박해 때부터 교우촌이 형성된 풍수원,
1791년 신해 교난 이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황사영이 백서를 집필하고 최초의 신학당이 있었으며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는 배론, 대구 교구 신앙의 요람지인 신나무골과 한티,
1801년 서울, 경기지방에서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공동체를 형성한 모래실(경북 청송),
부산 교구의 첫 공소로 알려진 살티(경남 울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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