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 금빛파도 가을이 익는다
남해 다랭이마을(가천마을)은 다랑이 논으로 유명하지만 이제 벼농사를 많이 짓지 않는다.
마늘 밭이 주를 이룬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민박으로 생계용 직종을 바꾼 지 오래됐다.
얼핏 마을에서 민박을 놓지 않는 집을 찾기 힘들 정도다.
관광객들이 몰려든 지 수년째. 마을은 갈수록 좀더 깔끔해지고 과거 오지마을의 느낌을 벗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가을이면 이곳이 떠오른다.
먼 옛날 농토 한 뼘이 아쉬워 산비탈을 깎아 만들었다는 계단식 논과 마을의 풍광은 여전하고,
남쪽 바다는 변함없이 새파랗다.
다랭이마을의 한 민박집에서 가을의 아침을 맞았다.
남중고도가 내려온 가을 햇볕은 그윽했지만, 뜨거웠다.
그만큼 뜨거운 빛을 내준 덕분에 벼는 제법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해보다 먼저 깬 마을 사람들이 아침부터 분주히 논밭을 오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남해는 '남쪽 바다'를 지칭하는 남해가 아니다.
경상남도의 '남해'라는 이름의 군이다. 이곳은 연륙교로 연결돼있긴 하지만 섬이다.
제주도·거제도·진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다랭이마을은 이제 '남해' 하면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 됐다.
바닷가 절벽에 더덕더덕 붙은 마을에 층층 계단식 논이 바다까지 흐르는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는 곳. 지금은 여느 유명한 마을이 그렇듯 벽화가
담벼락과 지붕 위에 그려지고, 골목마다 친절한 간판이 세워졌으며,
나무 데크로 이뤄진 산책로도 편리하게 조성됐다.
다랑논의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옛 이야기 한 토막.
한 농부가 일을 하다 논을 세어보니 한 배미가 모자랐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더란다.
가파른 산을 깎아 한 뼘 한 뼘 농토를 넓힌 이곳에는 그 정도로 작은 크기의 논배미가 존재한다.
다랭이마을로 '남해 바래길'이라는 길이 지난다.
옛날 다랭이마을의 조상들이 지게를 지고 땔감과 곡식을 나르던 길이라고 해서
'다랭이 지게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남해 바래길' 1코스의 다른 이름이다.
줄곧 한쪽으로 남해의 비경을 안고 숲과 바다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코스는 평산항~유구 철쭉군락지~사촌 해수욕장~선구 몽돌해변~향촌 몽돌해변~
향촌 전망대~가천 다랭이마을~(구)가천초교. 전체를 다 걸으면 16㎞,
5시간가량 걸린다. 이곳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벼와 마늘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오지,
다랭이마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이 마을 출신 김종철씨가 면장으로 부임하면서 마을 뒤쪽의
설흘산 등산로를 개발하면서부터다.
2002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농촌 전통 테마마을로 선정되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
조상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100여층의 계단식 논을 일궈놨다.
애초 아무것도 없던 이곳 설흘산을 떠올리면 경이로운 의지다.
바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배 한척 없이 농사일로 생계를 이었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곳 산비탈이 얼마나 가파른지는 마을 앞 바닷가에 내려섰다가
다시 마을까지 올라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마을길을 내려가 낭떠러지 절벽을 끼고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마을의 다랑이 논들이 올려다보이는 해안 산책로는 절경이다.
아래로 아찔한 기암 절벽이 뻗어있으며 옆으로는 금빛 다랑이 논이 눈부시고,
멀리 구불구불한 해안을 따라 이어진 작은 해변과 한려수도 청정해역의
푸른 바다까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다랭이마을 주민들이 아침부터 파종에 열중하고 있다.
남해 | 김창길 기자두 개의 정자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바닷가까지 내려간다.
마을 사이로 계곡물이 흘러 바다로 닿고 있다.
아슬아슬한 구름다리를 건너 널따란 갯바위 위에 한참을 앉아 바다를 굽어본다.
남녀 한 쌍이 '연인다리'라고 불리는 구름다리를 건너와 삼발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데 열중하고 있다.
멀리 몽돌해안 갯바위에 서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공복에 다시 마을로 걸어 올라오는 길은 힘에 부쳤다.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에 찬다.
중간 중간 만들어 둔 정자에 앉아 조금씩 숨을 돌린다.
아침부터 땀을 비오듯 쏟고있는데 한 주민이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서 왔다고 했더니 "다랭이마을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다들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는데, 아가씨는 어떻소?" 한다.
그저 웃는 수밖에 없다.
다랑이 논이 보이는 곳에 올라서니 해가 아직 다 떠오르지 않아 그림자가 반쯤 져 있다.
그림자가 걷혀 논이 완전히 노랗게 드러날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오전 8시. 파전에 유자잎 막걸리로 유명한 시골할매 막걸리집을 비롯해
마을의 음식점들이 문을 열 즈음까지 아직 1시간 남짓 남아있다.
평산마을부터 다랭이마을을 지나 숙호까지 이어지는 약 15㎞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이곳은 밤 풍경도 아름답다.
전날 밤, 해안도로를 달려 다랭이마을로 들어서는데 달빛이 휘황했다.
달빛에 은하수를 흩뿌린 듯 빛나는 바다와 그 곁에 드리운 어두운 절벽의 실루엣.
그림처럼 보였지만, 꿈이 아니라 실제였다.
하동에서 남해로 넘어오는 길의 논에는 작고 낮은 조명이 띄엄띄엄 파랗고 하얗게 반짝였다.
반딧불이 같았다. 일행은 가로등 대신 새로운 아이디어의 조명인 줄 알고 감탄했는데,
다음날 아침 자세히 들여다보니 해충을 잡기 위한 조명시설이었다.
농촌에서 '장식용 조명'을 떠올린 도시 사람들은 무안해 허허 웃기만 했다.
▲여행길잡이
■ 경부고속도로(서울~대전),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대전~진주),
남해고속도로(진주~사천)를 지나 사천IC로 진출한다.
사천→창선·삼천포대교→지족리→앵강고개 19번 국도 이용→앵강고개에서
1024번 지방도로를 타고 월포 두곡 해수욕장을 지나 석교마을 농로길을 지난 뒤 좌회전→
청소년 수련원을 지나 해안도로를 타고 오면 '가천 마을' 표지가 보인다.
■ 남해읍 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랭이마을까지 하루 18차례 마을버스가 다닌다.
버스시간 문의는 남해터미널(055-864-7101), 남흥여객(055-863-3507).
*다랭이마을에는 민박집이 20여가구에 이른다. 4인 기준 4만~5만원.
■ 시골할매막걸리(055-862-8381)는 다랭이마을 주민인 할머니가 직접 담그는
유자잎막걸리와 해산물을 가득 넣은 파전으로 유명하다. 막걸리 5000원, 해물파전 8000원.
■ 다랭이마을 주소는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 문의 010-4590-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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