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믿음생활...

가상칠언 묵상

코알㉣r 2012. 3. 18. 23:40

가상칠언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모든 삶에는 절정의 시기가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화려한 승리의 순간을 삶의 절정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 절정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시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생애 절정인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첫마디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고 못 박으라고 외치는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용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상칠언 2.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의 능력을 처음으로 경험한 사람은 비천한 강도였습니다. 그에게는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세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두번째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비참한 인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세번째로 사랑의 예수님 앞에 자신의 생애를 의탁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으로 축복해주십니다. 내 과거가 어떻든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을 때 완전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말씀인 것입니다.

 

 

 

가상칠언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한 무리의 장정들은 모두 배신하고 사라져버리고 고통으로 인해 자기 한 몸 추스르기에도 힘겨운 그 순간에도 자신으로 인해 슬픔이 봇물처럼 터져나가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예수님의 자애로운 음성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극심한 고난에 거하는 중에도 인생들의 실픔과 아픔을 돌아보십니다.

요한도 예수님을 배신한 열두 장정들 중에 하나로 중간에 실패한 낙오자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죄과가 있고 부족함이 있고 실패가 있어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사랑으로 영원한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가상칠언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시는 고통의 순간에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시는 고통의 순간 온 천지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이 어두움의 의미는 3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어두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한 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선포이자 증언입니다. 둘째, 이 어두움은 우리의 죄과가 예수님을 죽일 만큼 심각하고 무섭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이 어두움은 하나님의 완전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한 이 철저한 심판의 순간을 통해 우리는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가상칠언 5. 내가 목마르다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부터 6시간동안 계속 피를 흘리시면서 말할 수 없는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고 하시며 목마름의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 셰계의 진흙, 즉 진노의 육체를 입고 스스로 갇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포도주로 입술을 축이게 하려할 때도 거부하시며 온 몸으로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하시고자 결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축복하신 것은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라고 축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반드시 여러 모양으로 오는 고난과 핍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천하를 소유한 것 입니다.

 

 

 

 

 

 

가상칠언 6. 다 이루었다.

우리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들의 모든 죄 짐을 지고 완전한 속죄를 100% 완성하셨습니다. 이 용서의 확신으로부터 우리는 이 땅에서 위대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면서 인생들의 모든 죄과를 완전하게 속죄하신 그 지점이 우리 인생들을 향한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 비록 한 평 정벌한 적 없지만 이 땅의 백성들을 향한 위대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예수님의 삶 속에 완전한 속죄가 있었고 언약의 완전한 완성과 완전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가상칠언 7.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예수님께 하나님은 아버지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아버지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는 천 배, 만 배의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 곁에 좌정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죄사함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인 것을 믿고 내 인생 전체를 그 분께 의탁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의탁할 수 있는 분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내 인셍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겟세마네라고 하는 동산에서 밤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기도를 얼마나 집중해서 하셨는지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이 핏방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기도가 무엇이었습니까?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지는 일을 안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서 죽으러 오신 분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왜 그것을 피하려고 그러셨을까?

예수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랫동안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채찍으로 살이 찢겨져 나가는 아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침 뱉고 조롱할 때 참고 인내해야 하는 아픔, 십자가에서 벌거벗고 매달려야 하는 수치심...

이런 것들이 전부 예수님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까?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그런 것 때문에 십자가를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절규입니다.

그동안 참고 참고 참던 것이 터져서 소리를 지르는 그런 절규입니다.

이 절규에는 분노와 고독과 두려움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외침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한 분이시지만 3위로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시적으로 나타난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3위1체라고 명명합니다.

3위 하나님에게는 갈등이나 분열 같은 것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깊이 지원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소리 지르는 예수님의 절규를 들어보니까 예수님이 한 번도 갈라져 본 적이 없는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았다고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다”고 기도할 만큼 예수님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지요.


우리에게는 이 단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단절 속에서 태어나고 단절 속에서 살다가 단절 속에서 죽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단절이라고 하는 게 일상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이미 공부하셨겠지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죽음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에덴동산 가운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죽음에는 3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단절이고, 두 번째는 육체적인 죽음이고, 세 번째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제일 처음에 경험한 것이 무엇이었냐면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이었습니다.

나머지 두 개는 첫 번째 것의 결과물입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는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죽는 것이고, 지옥에 가는 사람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전쟁이나 폭력이나 자연재해, 가난, 질병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고 피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피해지지 않지요.

성경은 이것들도 역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크고 많은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그러니까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단절을 십자가에서 경험하시는 것입니다.

이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렇게 절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왜 하셨을까?

성경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지만 우리로서는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과의 단절로 죽어가는 우리를 구하시려고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과의 단절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이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의 이 절규를 깊이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