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맴돈 땅끝, 희망을 잇다
아침 7시, 땅끝으로 출발한다. 생각보다 밝은 하늘이다. 경기권에서 벗어나니 먹구름이 끼기 시작해 전라도와 가까워질수록 먹구름이 살벌하다. 군데군데 떨어지는 빗방울까지 가세한다. 이 길이 땅끝으로 이어졌는지, 상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인지…흔치 않은 날씨의 훼방이 점점 거세진다. 땅끝을 밟고 싶다는 일념이 더욱 단단해진다. 이런 날에는 하늘이 잠깐 열리는 찰나에 명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순간을 놓치게 될까 봐 오히려 조마조마하다. 그렇게 해남군으로 입성, 첫 인사는 양배추 밭이 건넸다. 해남군 계곡면, 해풍을 맞으며 자란 양배추 밭이 펼쳐졌다. 겉잎에서 속잎으로 갈수록 색과 질감이 연하다. 속물을 감싼 겉잎은 참으로 강직하다. 두꺼운 잎이 얼마나 단단한지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겠다는 듯 곧고 잎맥은 마치 보디빌더 팔뚝의 핏줄처럼 강렬한 생명력을 전한다. 썰물이 소리 없이 잔잔한 물결 따라 빠진다. 인적도 없어 호젓하다. 차분한 남해 위로 살벌하게 하늘이 요동치는데, 바다에 있어야 할 파도가 하늘에서 출렁인다. 제우스가 잠자는 포세이돈을 깨우려는 모양이다. 바닷물이 빠진 자리로 가까이 가보니 작은 생물체들이 순식간에 움직여 갯벌구멍 속으로 숨는다. 게다.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카메라로 포착하는데 꽤나 수고스럽다. 이렇게 남해의 첫인상은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땅끝마을 전경 77번 국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 20여 분 지났을까. 바다가 안보이기 시작하더니 산을 넘는다. 그리고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땅끝마을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형상이다. 초행길이라면 마을 어귀의 관광안내소에 잠깐 들리길 권한다. 관광 소책자도 받고, 숙박, 선착장, 전망대, 도보 코스, 현지 제철음식 등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숨을 고르고 진짜 땅끝, 북위 34도 17분 21초의 땅끝탑으로 지체 없이 출발. 사자봉에 지어진 전망대가 보인다. 그 너머에 땅끝탑이 있다. 크게 3가지 경로로 갈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갈 것인가. 천천히 걸어갈 것인가. 전망대 근방의 주차장까지 차 이동 후 나머지 구간을 걸어갈 것인가. 어떻게 갈지 고민이다. 어느 하나 놓치기 아쉽다. 문화생태로 우선 도보만으로 이동하는 코스를 살펴보자.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운치 있는 남해를 즐기기에 이보다 적당한 건 없다. 선착장 근처, 맴섬이 보이는 곳에 땅끝으로 이어지는 문화생태로 입구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군부대에서 순찰용으로 쓰이던 길이다. 현재는 길 폭을 좀 더 넓혀 관광용으로 활용된다. 바다와 섬이 만나는 접점을 따라 이어진 완만한 경사의 길을 따라 이동하면 땅끝탑이다. 땅끝매력에 좀 더 편안히 심취하고 싶다면 모노레일을 타보자. 모노레일 승강장은 전망대에서 동쪽으로 내려간 능선 끝에 있다. 모노레일 위치 알림판이 마을 곳곳에 배치돼 찾기는 수월하다. 땅끝마을, 선착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약 7부 능선을 넘을 즈음해서 드문드문 보이던 다도해가 펼쳐진다. 제일 가까이 보이는 섬이 흑일도 그 왼쪽, 땅끝마을과 가까워 보이는 섬이 백일도다. 전망대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 후 전망대를 가는 방법은 유일하게 서쪽에서 전망대로 가는 방법이다. 이동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높은 편이다. 노을이 지는 시각에는 이 코스가 좋겠다. 위 사항을 참고해 취향에 따라 선택하시라. 세 가지 경로를 다녀본 경험에 따르면, 남해는 한 번도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세 가지 경로의 종착지, 전망대에 도착했다. 높이 약 38m 전망대를 이용하면 좀 더 깊숙한 남해를 볼 수 있다. 유리창에 붙은 남해의 섬 이름과 전경을 매치하며 추억에 이름을 달아주자. 전망대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모습 사자봉은 한반도의 최남단의 봉우리다. 사자봉에서 바다로 숨어든 육지의 끝이 멀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땅끝탑까지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오솔길이다. 경사변화가 제법 심하다. 바닥이 목재로 평탄하게 설치됐지만 아찔한 경사로가 긴 편이라 조심해야 한다. 매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8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국토순례 대장정을 나서는 이들은 이곳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다짐이 세워졌고 어떤 희망을 길어갔을까. 마음속으로 무수한 애환이 파고드는 기분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제주도와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흐린 날씨 중에도 이렇게 흐린 날을 만날 줄이야. 제주도는 커녕 대략 10km 떨어진 섬도 흐릿하다. 하지만 이 또한 자연의 한모습이고 다시는 똑같은 풍경을 찾을 수 없음에 감동은 컸다. 멋진 낙조를 기대하기엔 구름이 너무 두껍다. 그 감동을 채워줄 다른 것이 필요하다. 남해 곳곳에 설치된 구조물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전복양식장이다. 전복이 낙조를 대신해 감동을 채워줄지는 미지수지만 배를 든든히 채우기엔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전복죽 (취재협조 : 다도해) 전복죽에 녹색끼가 돈다. 야채를 갈아 넣은 줄 알았으나 아니다. 식당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전복의 내장을 갈아 넣어 색깔이 그렇다고 한다. 또 손바닥 반만 한 전복 한 마리를 통째로 넣었다며 맛이 진할 거라고 덧붙인다. 선착장 앞,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문화생태로 입구이면서 맴섬이 있다. 이 두 바위 사이로 해가 뜨는 일출이 땅끝마을의 또 다른 자랑이다. 2월과 10월에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10월은 ‘땅끝 오름데이 축제’가 벌어진다. 전라남도 관광지의 대명사 ‘해남 땅끝마을’. 도보로 반나절이면 땅끝마을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비교적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시작과 끝이 있는 한반도 유일 장소다. 헌 마음을 바다에 던졌다. 새로운 마음, 희망, 다짐을 업고 첫 발걸음 뗐다. ※TIP ▶◎ 땅끝마을 가는 방법 자가용 ◎ 전복죽 취재 음식점 : 다도해 (문의. 061-532-0005) 주변 볼거리 |